니체, 프로이트, 맑스 이후(writing)
김상환이 말하는 계사, 혹은 끈? 난 이게 들뢰즈가 말하는 ‘존재의 일의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김상환이 말하는 계사, 혹은 끈? 난 이게 들뢰즈가 말하는 ‘존재의 일의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1 두 개의 정의로부터 시작하자. ‘계기 없는 상호외재성’과 ‘상호외재성 없는 계기’
2 『시론』의 제목,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은 개념(지성)의 매개를 거치지 않은 것, 의식(정신)에 직접 ‘느껴지는’ 것을 다룬다. 곧, 감각과 감정. 베르그손의 중요한 전제는 이들의 실재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할 때 우리는 어떠한 실재성을 얻게 되는가?
3 베르그손은 『시론』에서 이원론을 제시하는 듯하다. 시간(지속)과 공간. 그러나 실제로는 지속의 일원론이다. ‘공간’은 단순히 바깥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 또한 정신(의식)에 의한다. 그런데 베르그손에게 정신에서 본질적인 것이 순수지속이고 의식 자체가 그것이라면, 정신의 ‘공간’ 또한 지속에 의해 가능해진다.
1 이러한 소박한 구별에는 인과에 대한 흄적인 모티프가 있다. 사태의 연합은 주관적이다. 왜냐하면 연합을 위해서는 보존이 필요하기 때문이며, 그 보존은 기억으로서 이루어진다. ‘공간’ 도 지속의 일종이다. 동질적 공간의 보존과 그 안에 병치되는 각 항들의 동일성을 위한 보존이 요구되기 때문. 그것은 지속이다. 단지 현실적인, 잠재력이 없는 지속. 지속의 공간적 상징.
4 들뢰즈의 거미에의 비유와 베르그손적 자유
? 왜 그러한 지속이 발생하는가? 의식의 출현을 가능케 한 것이 그러한 공간적 장싱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랑이라는 매체 자체는 감정이 아니라 하나의 코드이다”(니클라스 루만, 『열정으로서의 사랑』, 정성훈 외 옮김, 새물결 출판사, 2009, p. 37). 이에 대한 해명으로부터 시작하자.
“사회적 체계들은 오직 소통을 통해서만 성립한다”(앞의 책, p. 35); 그렇다면 한 사회적 체계가 독립분화하기 위한 관건은, 비개연적인 소통을 개연적이게 하는 소통매체의 존재다. 『열정으로서의 사랑』에서 다루고자 하는 사회적 체계는 연애라는 친밀관계이며, 이를 위한 소통매체가 곧 사랑이라는 코드다.
1장: 현대사회는 소통의 관점에서 이중의 발전을 보여주고 있다. 외연적으로 증가하는 비인격적인 관계들과 내포적으로 과밀해지는 인격적인 관계. 비인격적인 관계란 “서로 상대방을 아는 것과 무관한 신뢰”(앞의 책, p. 28)다. 인격적인 관계란
결국 ‘판단’(력)의 문제다1). 판단에는 반성적 판단과 규정적 판단이 있다. 『판단력비판』이 대상으로 하는 것은 반성적 판단이며,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의 그것은 규정적 판단의 한 양태다2).
1) 임팩트 있는 글쓰기와, 풀어쓰는 글쓰기; 선택의 문제.
2) 이러한 파악을 통해 의문이 하나 풀린다: 인식론을 인지과학이나 뇌과학으로 대체하는 문제, 칸트가 인식(사변적 관심뿐 아니라 외부 대상에 대해 갖는 이성의 모든 관심)에 대하여 설정한 능력들/기능들(이성, 지성, 상상력)을 뇌 등에서 찾을 수 있는가? 칸트의 제안이 실증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가? 이러한 물음에 대한 부정적인 답변이 아닌 긍정적인 답변이 제시될 수 있어야 한다. 부정적인 답변, 예컨대 칸트의 제안은 실증적으로는 타당하지 않지만 그 나름의 의의가 있다 등등. 그런데 어떤 ‘나름’의 의의? 결국 역사적 의의밖에 남는 것이 없다.
인식능력들 각각에 주목할 때, 우리는 그것들을 단순한(분해불가능한) 기능으로서, 일종의 기관으로서 이해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기관이 위치하는 육체의 장소를 찾아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가설일 따름이다. 하지만 그것들을 판단이라는 작용을 가능케 하는 힘(능력)들로서, 판단이 가능하기 위해 필요한 일련의 정신적 사태들로서 이해한다면, 칸트의 제안에 말그대로의 현대성이 드러난다. 우리는 인식능력들에 어떤 고정된 장소를 지정해줄 필요가 없다. 대신, 판단을 가능케 하는 물리적 과정을 제안할 필요가 있다. 칸트가 말하는 이성, 지성, 상상력은 이러한 물리적 과정과 판단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러한 물리적 과정은 철학의 대상이 아니다. 물리적 과정에 대한 진리는 (자연)과학에 의해 생산된다. 철학은 그 진리들을 그 원래의 맥락에서 이탈시켜 그 자신의 목표에 적합하게 변주해야 한다. 여기서의 이탈이 오독을 말하는 건 아니다. 이러한 철학의 작업은 정당하며 또한 요구된다. 정신이 실재하며, 또한 (지금의 맥락에서) 우리가 ‘판단’할 수 있다면.
-이러한 작업의 사례: 키스 W. 포크너, 『들뢰즈의 시간의 세 가지 종합』에서 2장, 3장.
text: David McLellan(edit.), Oxford1999.
굵게 표시된, 모든 강조는 내가 했음(All emphasis, which is bold be done for myself).
Part 1. Commodities and Money
제1부, 상품과 화폐
Chapter 1. Commodities
제1장, 상품
Section 1. The Two Factors of a Commodity: Use-Value and Value(the Substance of Value and the Magnitude of Value)
제1절, 상품의 두 요소: 사용가치와 가치(가치의 실체와 가치의 크기)
The wealth of those societies in which the capitalist mode of production prevails, presents itself as ‘an immense accumulation of commodities’, its unit being a single commodity. Our investigation must therefore begin with the analysis of a commodity.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한 사회에서 부는 ‘상품의 거대한 집적’으로 나타난다; 그것의 기본단위가 개별 상품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연구는 상품에 대한 분석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A commodity is, in the first place, an object outside us, a thing that by its properties satisfies human wants of some sort or another. The nature of such wants, whether, for instance, they spring from the stomach or from fancy, makes no difference. Neither are we here concerned to know how the object satisfies these wants, whether directly as means of subsistence, or indirectly as means of production.
(개별) 상품은 우선적으로, 외적 대상이다; 그것은 그 자신의 속성으로써 어떠한 인간 욕구를 만족시킨다. 그 욕구의 본질이 무엇이냐 하는 건 별 문제되지 않는다; 그것이 위장으로부터든, (순간적인) 바람에서부터든. 마찬가지로, 우리는 또한 이 대상이 욕구들을 어떻게 만족시키는지도 신경쓰지 않는다; 그것이 생필품으로서 직접적으로 그러하든, 생산수단으로서 간접적으로 그러하든.
Every useful thing, as iron, paper, etc., my be looked at from the two points of view of quality and quantity. It is an assemblage of many properties, and may therefore be of use in various ways. To discover the various uses of things is the work of history. So also is the establishment of socially-recognised standards of measure for the quantities of these useful objects. The diversity of these measures has its origin partly in the diverse nature of the objects to be measured, partly in convention.
The utility of a thing makes it a use-value. But this utility is not a thing of air. Being limited by the physical properties of the commodity, it has no existence apart from that commodity. A commodity, such as iron, corn, or a diamond, is therefore, so far as it is a material thing, a use-value, something useful. This property of a commodity is independent of the amount of labour required to appropriate its useful qualities. When treating of use-value, we always assume to be dealing with definite quantities, such as dozens of watches, yards of linen, or tons of iron. The use-values of commodities furnish the material for a special study, that of the commercial knowledge of commodities. Use-values become a reality only by use or consumption: they also constitute the substance of all wealth, whatever may be the social form of that wealth.